최근 세계 최대의 자전거 부품 제조사인 시마노 (Shimano)가 자사 제품의 치명적인 결함을 인지하고도 이를 당국에 즉시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미국 정부와 막대한 과징금 납부에 합의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미국 현지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크랭크게이트 (Crankgate)로 불리며 브랜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습니다.
주행 중 쪼개지는 할로우텍 II 크랭크의 결함
사건의 중심이 된 부품은 시마노의 상급 자전거에 주로 쓰이는 11단 접합형 할로우텍 II (Hollowtech II) 크랭크셋입니다. 크랭크는 페달을 밟는 힘을 자전거 체인에 전달하여 바퀴를 굴리는 핵심 부품입니다. 시마노는 무게를 줄이면서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 금속판 두 개를 정밀 접착제로 붙여 내부를 비우는 독특한 공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이 접착 부위가 벌어지는 박리 (Delamination) 현상이 발생하면서 주행 중에 크랭크가 두 동강 나는 사고가 전 세계적으로 수천 건 보고되었습니다. 특히 높은 토크로 페달을 밟는 업힐 주행이나 고속 주행 시 크랭크가 파손되면 라이더가 중심을 잃고 추락하여 골절, 열상 등 생명을 위협하는 중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10년간 결함을 인지하고도 방치한 정황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CPSC)의 정밀 조사 결과, 시마노는 이미 2013년부터 2022년 사이 수천 건의 워런티 (품질 보증) 청구와 전 세계적인 소비자 부상 사례를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충격적인 팩트는 시마노가 결함의 위험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내부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입니다. 시마노는 이 10년의 기간 동안 크랭크 암의 분리 및 파손을 막기 위해 9차례의 주요 공정 변경과 25차례 이상의 세부 설계 수정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고 보고는 계속되었으며, 시마노는 법적 의무인 당국 보고와 대대적인 리콜 조치를 미루며 소비자들을 위험에 노출시켰습니다.

미국 정부와의 합의 내용과 과징금
결국 시마노는 제품 결함이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고서도 즉시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인정하고, 1,150만 달러 (한화 약 150억 원) 의 민사 과징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단순히 과징금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마노는 앞으로 소비자제품안전법 (CPSA) 준수를 위한 엄격한 내부 통제 절차와 컴플라이언스 (준법 감시)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향후 준법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한 내부 감사 보고서를 매년 CPSC에 제출하여 정부의 감시를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전문가가 분석한 기술적 원인
기계공학 전문가인 마크 빙글리 (Mark Bingley) 박사가 파손된 크랭크들을 분석한 결과, 이 결함은 겉보기에 부식이 전혀 없는 새 제품 같은 상태에서도 발생할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주요 원인은 크랭크 암 내부의 접합층 (Bonding Layer) 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분리되는 현상에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영국 소비자안전국 (OPSS) 은 시마노의 조치가 미흡하다며 해당 제품들이 안전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강제 리콜이 실시된 반면, 영국과 한국 등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강제 리콜 대신 점검 후 이상이 발견될 때만 교체해 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차별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남긴 경제적 타격과 전망
시마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금전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시마노의 재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에만 리콜 처리 비용과 과징금 등 크랭크게이트 관련 수습 비용으로 약 7,000만 파운드 (한화 약 1,200억 원) 가 투입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시마노의 11단 구동계 중고 가격 하락은 물론, 향후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